밀양 손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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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밀양 손씨는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인물 구례마를 시조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신라 유리 이사금 때 모량부 손씨로 사성되었으며, 시조는 신라 흥덕왕 때 효행으로 국효(國孝)로 불린 손순이다. 고려 시대에는 손긍훈이 후삼국 통일에 기여하여 가문을 일으켰으며, 조선 시대에는 문과 급제자 38명, 무과 급제자 125명을 배출했다. 좌사전공파 등 다양한 분파로 구성되어 있으며, 손수경, 손비장, 손병희, 손정도를 비롯한 여러 인물들이 활약했다. 밀양 손씨는 대동항렬표에 따라 항렬자를 사용하며, 2015년에는 306,895명으로 조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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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손씨 - [성씨/가문]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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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손씨 | |
성씨 | 밀양 손씨 |
한자 표기 | 密陽孫氏 |
나라 | 한국 |
관향 | 경상남도 밀양시 |
시조 | 손순(孫順) |
중시조 | 손긍훈(孫兢訓) |
집성촌 | 경상남도 밀양시 전라남도 보성군 충청남도 당진시 고대면 평안남도 양덕군 |
인물 | 손수경 손비장 손기양 손기남 손병희 손지현 손재하 손영목 손홍원 손정규 손진태 손창식 손동욱 손지환 손원일 손기정 손명순 손영길 손주항 손세일 손경식 손지열 손학규 손용근 손정수 손혜원 손석희 손석도 손명순 영부인 |
년도 | 2015 |
인구 | 306,895명 |
중앙종친회 | 밀양손씨 중앙종친회 |
2. 기원
《삼국유사(三國遺事)》에 따르면 진한(辰韓) 육촌(六村) 중 무산대수촌(茂山大樹村)의 촌장(村長) 구례마(俱禮馬)가 처음 이산(伊山)에 내려와 모량부(牟梁部) 손씨(孫氏)의 원조(元祖)가 되었다고 한다.
시조 '''손순'''(孫順)은 신라 흥덕왕 때 경북 경주 모량리 출신으로 효행이 뛰어난 인물이었다. 835년(신라 흥덕왕 10년) 손순의 효행이 왕에게 알려져 신라의 국효(國孝)로 일컬어졌고, 월성군(月城君)에 봉해졌다. 《삼국유사》에는 손순이 어머니를 봉양하기 위해 자식을 파묻으려 한 이야기가 나온다.[1]
《동국사략(東國史略)》에서는 기원전 57년 육부(六部)가 알천(閼川)에 모여 상의하여 박혁거세를 옹립하여 임금으로 모시고 금성에 도읍을 정하였다고 한다.
《동국통감(東國通鑑)》에는 신라 유리 이사금(儒理尼師今) 9년(서기 32년) 대수부(大樹部)를 모량부(牟梁部)로 고치고 손씨(孫氏)로 사성하였다고 한다.
3. 역사
손순의 장손자 손익감(孫翼減)도 공을 세워 응천군(凝川君)에 봉해지면서 밀양을 본관으로 삼았다.
손순의 7세손인 중흥조(中興祖) 손긍훈(孫兢訓)이 고려 태조를 도와 후삼국을 통일하는 데 공을 세워 보국숭록대부(輔國崇錄大夫)에 오르고 광리군(廣理君)에 봉해져서 가세(家勢)를 크게 일으켰다.
밀양 손씨는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38명, 무과 급제자 125명을 배출하였다.
4. 분파
5. 주요 인물
- 손수경(孫守卿) : 고려 충숙왕 13년(1326년) 중랑장이 되었고, 1342년 판종부시사로 1등공신에 책록되었다. 충목왕 즉위 후(1344년) 첨의참리가 되어 서연에서 시강하였고, 찬성사, 판삼사사를 역임했다. 충목왕 사후(1348년) 왕자 저(㫝 : 뒤의 충정왕)를 시종하여 원나라에 다녀와 즉위시킴으로써 추성선력익대정원공신 판삼사사 의창부원군에 봉해졌다. 좌정승, 우정승, 정방제조, 도첨의정승을 역임했다.[2]
- 손비장(孫比長) : 조선 세조 10년(1464년) 생원으로 별시문과에 급제했다. 예종 1년(1469년) 예문관수찬으로 있으면서 신숙주 등과 『세조실록』 및 『예종실록』 편찬에 참여했고, 1476년 예문관부제학, 참찬이 되어 시무4조를 왕에게 건의하였다. 1485년 서거정 등과 함께 『동국통감』을 찬진하고 예문관부제학에 이르렀다.
- 손기양(孫起陽, 1559년 ~ 1617년) : 선조 18년(1585년) 사마시에 합격, 선조 21년(1588년) 식년문과에 급제 후 성균관전적, 울주판관, 영천군수를 역임했다.[3]
- 손덕심(孫德沈) : 선조 25년(1592년) 임진왜란 때 동생들과 의병을 일으켜 영천 창암에서 적을 무찔렀다.
- 손기남(孫起南) : 선조 25년(1592년) 임진왜란 때 향교에 뛰어들어 오성제현의 위판을 암굴에 옮겨 보존, 왜란 후 향교재건의 표준이 되게 하였다.
- 손병희(孫秉熙, 1861년 ~ 1922년) : 일제 강점기 천도교 지도자이자 독립운동가.
- 손정도(孫貞道, 1881년 ~ 1931년) : 일제 강점기 정치인, 독립운동가. 대한민국 임시 정부 의장을 역임.
- 손일민(孫逸民, 1884년 ~ 1940년) : 대한민국 임시정부 임시의정원 상임의원을 역임.
- 손동욱(孫東頊, 1909년 ~ 1976년) : 대한민국의 대법관 역임.
- 손원일(孫元一, 1909년 ~ 1980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독립운동가. 국방부 장관 역임.
- 손명순(孫命順, 1929년 ~ 2024년) : 대한민국의 영부인 역임.
- 손재식(孫在植, 1934년 ~ ) : 대한민국의 관료. 국토통일원 장관 역임.
- 손경식(孫京植, 1939년 ~ ) : 대한민국의 기업인. CJ그룹 대표이사회 회장 역임.
- 손지열(孫智烈, 1947년 ~ 2019년) : 대한민국의 대법관. 제14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 역임.
- 손학규(孫鶴圭, 1947년 ~ ) : 대한민국의 정치인. 제14·15·16·18대 국회의원, 제31대 경기도지사, 제33대 보건복지부 장관 역임.
- 손혜원(孫惠園, 1955년 ~ ) : 대한민국의 정치인, 예술가. 제20대 국회의원 역임.
- 손석희(孫石熙, 1956년 ~ ) : 대한민국의 언론인. JTBC 보도부문 총괄사장 역임.
- 손주은(孫主恩, 1961년 ~ ) : 대한민국의 교육자. 메가스터디 설립자.
6. 항렬자
41세 | 42세 | 43세 | 44세 | 45세 | 46세 | 47세 | 48세 | 49세 | 50세 | 51세 | 52세 | 53세 | 54세 | 55세 | 56세 | 57세 | 58세 | 59세 | 60세 | 61세 | 62세 | 63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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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인구
연도 | 가구 수 | 인구 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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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 58,369가구 | 243,473명 |
2000년 | 85,333가구 | 274,700명 |
2015년 | 306,895명 |
참조
[1]
서적
청소년을 위한 삼국유사
서해문집
2006-02-01
[2]
웹사이트
『고려사』 권108, 열전21
https://terms.naver.[...]
[3]
웹사이트
손기양
http://encykorea.a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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